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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인물

첫 번째 ‘애플’ (feat. 블루박스)


 전화 교환원이라는 직업은 오늘날 거의 잊혀졌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 전화교환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교환원은 두 사람 사이의 통화를 수동으로 연결해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었어요.

 당시의 전화 교환원들은 수많은 선이 연결된 거대한 스위치보드 앞에서 일하며, 호출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어요 ~

전화회선의 주파수대역폭은 300∼3,400Hz가 사용되고, 교환기 전화의 교환방식은 교환원의 필요 여부에 따라 수동식과 자동식으로 분류 되어요.

 

서두 가 너무 길었나요 ㅎ

 

그럼 바로 ~

스티브 워즈니악과 블루박스 이야기를 시작 할께요 .. 

 

 

 

1. 호기심 많은 대학생 워즈니악의 발견이었어요

1971년, 스티브 워즈니악은 UC 버클리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는 늘 최신 기술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전화 시스템 구조에 관한 정보를 우연히 접하게 돼요.

 

특정 주파수, 

특히 2600Hz 톤을 이용하면 전화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느꼈어요.

 

 

그는 곧장 관련 자료를 모으고 버클리의 기숙사 방 안에서 블루박스를 처음으로 회로에 구현하기 시작했어요.

이 실험이 성공하면서 그의 천재적인 설계 능력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되었어요.

 

 

2. 블루박스는 워즈니악의 손으로 완성됐어요

워즈니악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더 작고 정밀한 블루박스를 직접 설계했어요.

회로 하나하나를 효율적으로 구성했고 휴대 가능한 크기로 줄이는 데 성공했어요.

 

 

그가 만든 블루박스는

단지 전화망을 속이는 장난감이 아니라

전자 회로 설계의 예술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어요.

 

 

그는 버클리에서 혼자 이 회로를 실험하고 기능을 점점 고도화하며 완성도를 높여갔어요.

이때까지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라기보다

워즈니악 개인의 깊은 탐구와 기술 집착이 중심이었어요.



 

 

3. 잡스는 그 가능성을 바로 알아봤어요

워즈니악은 블루박스를 완성한 뒤 스티브 잡스에게 이 기계를 보여줬어요.

잡스는 단번에 가능성을 알아봤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이건 우리 인생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잡스는 워즈니악에게 이걸 실제 제품처럼 만들어서 팔아보자고 제안했어요.

워즈니악이 기술을 맡고

잡스가 판매 전략을 맡은 거예요.

 

 

그들은 몇 대의 블루박스를 만들어 기숙사 친구들,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어요.

이게 두 사람의 첫 번째 '공동 창업 실험'이었어요.

 

 

4. 장난 같지만, 기술과 상상력이 만난 순간이었어요

이 장치는 엄밀히 말하면 불법 기기였어요.

전화망을 조작해 무료로 장거리 전화를 거는 행위는 위법이었지만

그들은 단순한 이득보다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에 빠져 있었어요.

 

워즈니악은 훗날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블루박스를 만들지 않았다면 애플도 없었을 거예요.”

 

 

그 말은 허세가 아니라

기술과 사업이 처음으로 만난 계기였다는 뜻이에요.

잡스는 이 경험을 통해
제품을 어떻게 시장화할지를 배웠고
워즈니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체감했어요.

 

 

5. 결국 블루박스는 그들만의 첫 번째 ‘애플’이었어요

블루박스는 나중에 경찰에 발각될 뻔하면서 둘은 조용히 그 프로젝트를 정리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건 워즈니악이 설계하고,
잡스가 세상과 연결한 최초의 ‘제품’이었어요.

 

특히 워즈니악에게 블루박스는

기술이 단지 코딩이나 전선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연결할 수 있는 ‘마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어요.

 

이후 둘은 Apple I 을 함께 만들고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게 돼요.

 

하지만 그 전, 기숙사 방에서 완성된 작은 블루박스가 모든 시작이었어요.